2010년 7월 15일 목요일

말썽꾸러기 잠수부들

얼마 전에 아는 후배한테서 뜬금없이 고민상담 요청이 왔었다.

같이 프로젝트에 나가 있는 나이 어린 동료 한명이 이틀째 출근을 안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기간 내내 칼퇴근 하다가 갑자기 일이 몰려서 바빠진 상태이긴 했지만, 전혀 어떤 문제가 있는 내색이 없어서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워 했다. 그 어린 친구는 후배가 추천해서 입사를 시켰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도의적인 책임까지 갖게 되었다.

그 어린 친구는 나도 잘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다. 개발에 대한 기본기도 탄탄했고 전반적인 스킬도 훌륭하였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 정확하고 무척 빨랐을 뿐더러 무엇보다 주위 동료들이 힘들어 할 때 많은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주로 여자들한테 도움의 손길을 뻗쳤지만..)

문제는 그 어린 친구가 이삼일 씩 무단 결근을 한 것이 벌써 네번째라는 것이었다. 예전 회사에서 무려 세 번의 전과가 있었고, 마지막에는 그 능력은 인정하나 조직의 질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미 회사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을 때였으리라.



그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척 좋아해서 그를 알게 된 그 다음 프로젝트에 무리를 해서 데려가기도 했었다. 역시 일을 무척 잘했다. 개발 뿐만 아니라 업무와 툴/패키지의 이해 수준이 남달랐다. 하나를 시키면 미리미리 셋을 해두는 정말로 "일을 잘하는" 친구였다.

그를 막 알게 됐을 당시 이 친구도 역시 무단 결근 전력이 여러번 있었다. 내가 PM으로 있었던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역시 하루 정도 잠수를 탔던 적이 가끔 있었다. 특히 이 때는 근태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서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소속회사가 여러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해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이 두 친구들이 약간 특이한 경우이겠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에는 근태문제로 말썽을 부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근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었다)

개인적으로 말못할 사정(주로 여자 문제)이 생겨서 연락없이 안나올 수도 있고, 전날 술로 떡이됐다가 다음날 오후에 일어나서 연락하기 두렵거나 혹은 미안하거나 해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늘어난 과도한 업무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감에 빠져 말그대로 어딘가로 도망가고픈 심정으로 잠수를 타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이게 지금 사는 건가?' 무지개 너머에 뭔가가 있을 것 같아 말그대로 잠적할 수도 있다. 어쩌면 회사에서 월급이 안나와 그냥 쉴 수도 있다. 술먹고 뻗어있다 어머닌가 할머닌가 돌아가셨다고 문자를 날렸다가, 조의금을 걷어서 병원으로 가려는 직원들에게 들통이 난 어느 신입사원에 대한 글을 네이트판인가 어디서 본 적도 있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 이런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고민이 되는 문제이다.

앞서 얘기한 두 사람 중 첫번째 어린 친구는 주로 조직에 화합하지 못했을 때 잠수를 탔다. 처음 알게된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일은 고됐지만 기술적으로나 성격상으로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고참들이 있었고, 동료들도 대부분 좋았었다. C Framework도 같이 만들면서 진행했던 터라 단순 노가다성 업무는 별로 없는, 어떻게 보면 신입사원으로써 가장 일하기 좋은 기회의 프로젝트였었다. 이 시기의 그 어린 친구는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실력을 드러내며 주위의 인정을 받았었고, 당연히 잠수를 타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 다음 조직이 문제였었다. 당시 경력으로 들어온 개발 경험이 많은 새 팀장과 마찰이 생기면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칭찬을 먹고 살아온 그 녀석은 결국 잠수를 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이 3번이었으니 하루 정도 안나온 적도 몇번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른 팀이어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이 시기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나와 같은 레벨의 팀장과의 문제이니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번째 녀석도 역시 프로젝트 내에서 문제가 있었다.
오픈을 3개월 남기고 중간에 들어와서 업무를 설계하고 개발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았는데, 주위에서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그대로 진행한 그 상황이 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태도도 심각했고 내분도 자주 생겨서, 결국 그 심한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잠수를 타버리고 말았다.

나와 같이 했던 다음 프로젝트에서의 하루 짜리 잠수는 왜 그랬는지 모른다. 힘들긴 했지만 내가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마 술때문이었을 거다) 급여도 밀리는 상황에서 팀원들에게 무얼 강요하기 어려운 입장일 뿐더러, 이심전심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라 내가 별 문제없이 무마해주면 더 열심히 일해서 맡은 일은 120% 해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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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덕이 아직은 한참 부족하여 이런 친구들이 프로젝트에서 말썽을 안부리게 예방하지는 못했다. 사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친구들은 보통 개인적인 성향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내가 경험해본 사람은 3~4명 밖에 안된다. 사실 다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아무리 주위 동료들과 즐겁게 잘 지낸다고 해도, 업무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일을 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딱 주어진 일과 관련된 그 주변 일들까지만 관심이 있고, 좀더 큰 범위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이 느끼는 책임감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것으로 국한된다.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있다면, 이들은 다른 부차적인 감정들(예를 들어 동료애나 소속감, 애사심 등)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다보니 스스로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프로젝트나 조직의 상황이 좋을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좀더 많은 일을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어렵고 많은 일을 남들보다 쉽게 하면서 받게 되는 칭찬과 보상에 희열을 느낀다.

프로젝트 상황이 어려워질 때가 문제다. 누군가와 불화가 생기거나 맡은 일이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 이들을 지탱하던 에너지는 사라지게 되고, 항상 자신감에 가득찬 이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점점 더 자라게 된다. 스스로 남들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시한폭탄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게다. 나는 소속감이나 동료애가 강해서 잘 터지질 않을 뿐이다.


이걸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이걸 미연에 방지할 유일한 방법은 문제가 안생기게 프로젝트나 조직을 잘 이끄는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이 폭탄이 터져서 프로젝트 내 누군가 잠수를 탔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미리 준비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근태를 중요시 여기는 프로젝트라면 무단결근은 치명적이다. 점심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는(당연히 연락도 안된다) 팀원에 대해 갑이나 을이 물어봤을 때 그자리에서 바로 답을 할 수 있는 핑계거리 한두개는 꼭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꼭 이런 식으로 얘기해야 한다.

> "아, 어제 제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급하게 본사에서 면담 요청이 있었습니다."
> "어? 지난 주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예비군훈련 갔습니다." (민방위는 약하다)

어차피 어떤 상황이든 리더는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냥 미리 보고하지 않은 죄로 리더 혼자서 욕먹으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경험상 왠만하면 두 번까지는 통했다. 일을 잘 하는 녀석이라면 두번까지는 봐줘야 하지 않을까? 아 물론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고 있다면 그 어떤 핑계도 안통한다. 주의하자.

가장 어리석은 리더는 이런 질문이 나왔을 때야 비로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으로 어리석은 리더는 "전화를 안받던데요"라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왜냐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얼마나 한심한가. PM은 문제를 보고하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해결하라고 있는 자리다.


구멍난 업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미리 백업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답이 없다. 전과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좋은 의미의) 오호담당제가 필요하다. 많은 일을 맡기되 그 일을 옆에서 배우며 클 수 있는 기회를 또 다른 더 어린 친구에게 줘야 한다. 또 그런 아랫사람이 생기면 시한폭탄이 좀더 늦게 터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한은 전적으로 위임하되 진행상황은 항시 체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팀원들 간 일의 무게를 판단해서 수시로 조절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미리미리" 사람을 더 투입해야 한다. 시한폭탄이 터질 듯 말듯한 그 음산한 느낌을 감으로 찾아내야 하니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좋은 리더가 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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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팀을 잘 이끈다 하더라도 돌발상황은 있는 법이다.
월급이 2개월 째 밀리면 아무리 한량같은 프로젝트라도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프로젝트 팀원의 절반이 교체될 때 나의 연기력은 대종상 감이었다. 아끼고 아꼈다가 중요한 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초점없는 눈빛으로 "이번달에도 안나와서... " 라고 하면 그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고객의 걱정은 이제 한명의 결근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성공여부로 넘어간다. 프로젝트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이 되다면 이렇게 핵심을 비껴갈 수 있는 방법을 써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3개월 째부터는 누가 왜 아직 안나왔는 지 고객도 물어보지 않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얼른 대체인력 구해서 수습만 잘 하면 된다.


나는 급여가 4.5개월 밀린 시점에 내가 데리고 간 저 친구를 잃었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킬 새도 없이 떠나 버렸다. 붙잡지도 못했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는가.

뜻한 바 이루고 잘 살기 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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