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맥스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고 한다.
수년간 몸담으며 꿈과 희망을 갖고 젊은 나날을 보냈던 티맥스의 워크아웃 소식에, 이미 예견은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 대한민국 Software의 미래라며 끊임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티맥스소프트가 어쩌다가 저렇게 한방에 훅 갔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맥스 몰락의 원인을 "무리한 윈도우 개발" 탓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박대연 회장에 의해 만들어진 "Software Stack" 전략 때문이라 본다.
Software Stack이란 OS - DB - Middleware - Framework - Application 등 시스템의 모든 Layer를 다 커버할 수 있도록 각 Layer에 맞는 제품군을 모두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그것도 자체 개발로... "이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IBM만이 갖고 있을 뿐이다"라고 박대연 회장은 늘 말해왔었다. Middleware야 원래 주력이었으니 논외로 하고, DB와 Framework(프로프레임)의 시작은 7~8년 까지 올라간다. 기업용 Embedded OS가 아닌 일반 사용자용 윈도우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불과 3년 정도일 뿐이다.
물론 IBM이 Software Stack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것은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Stack의 대부분은 M&A를 통해서 확보한 것이지 자체적으로 개발하지는 않았다. 자체 개발을 통해 모든 제품군을 가지려는 시도 자체가 망상이었을 뿐이다.
Software Stack 전략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시당초 박대연 회장은 Middleware, DB, OS 이 3개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Software Stack의 발단은 Framework의 잇따른 성공이었다.
지금은 프로프레임(ProFrame)이라고 불리는 티맥스 최초의 Framework은 구한미은행 코어뱅킹(차세대) 프로젝트가 종료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이때 만들어진 제품의 최초 이름은 프로뱅스(ProBanks?)였다.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이는 은행업무 개발을 위한 솔루션이었다. 그 당시 컴퍼넌트 개발실이 만들어지면서 Middleware Vendor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으로 넘어가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되자 이때 만든 솔루션을 Framework이라 부르며 한신정, 신한은행, 곧이어 SK Telecom까지 굵직한 차세대 프로젝트를 따게 되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저작권 소송으로 번진 이 시점의 Framework이 난 제일 좋았다. 최근의 버전(4.0)은 그 지향점은 이해하나, 유지보수가 어렵고 개발자들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하향평준화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개인적으로는 싫어한다.
한미은행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기에 방카슈랑스 붐이 있었다. 방카슈랑스는 보험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보험사와 은행 간의 System Interface가 중요한 화두였다. 이 때문에 Interface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솔루션이 필요했고, Middleware를 통해 네트웍 기술에 강했던 티맥스가 방카슈랑스 프로젝트를 휩쓸게 되었다. AnyLink가 바로 그것이다. (제품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하여간 휩쓸었다)
이러한 연이은 성공으로 인해 박대연 회장은 자신감과 욕심이 생겼다. Framework의 범위를 좀더 넓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사상 최고의 악수인 업무 영역까지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대우증권 프로젝트를 주사업자로 따면서 SI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해외로 진출하려면 비지니스 솔루션이 없으면 안되더라. 우리는 SI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만 개발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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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때부터 시작된 무지막지한 솔루션 개발이 티맥스를 서서히 허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를 전후해서 직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자만 안나면 되는 SI프로젝트 인력이 아니라 연구원들이었다.
> 손을 대지 말았어야 될 BPM 'BizMaster'
> 경쟁제품이 워낙 뛰어나서 성공할 수 없었던 APM 'SysMaster'
> X-Internet 붐을 타고 뒤늦게 시작했지만 아무런 경쟁력이 없는 'ProWeb'
> 표준 좋아하는 박 회장의 입맛에 맞게 시기 적절하게 Java 표준에 합류한 JSF, 이를 기반으로 어줍잖은 UI만을 강조했던 Web UI Framework 'ProWave'
> 한때 몰아친 SOA/ESB 열풍에 휩쌓여 허겁지겁 만든 'ProBus'
> 도대체 추구하는 게 뭐냐. 스펙의 함정에 빠졌던 'ProPortal'
> 무려 8년 동안 개발해서 Oracle과 비슷하게 보이는 데 성공한 'Tibero'
이 외에도 오픈프레임, ERP(ProERP), 보안 솔루션(SysKeeper), 검색엔진(ProSearch) 등 굵직한 것부터 AML(ProAML), IFRS(ProIFRS), 그룹웨어(ProGroup), 룰 엔진(ProRule), 상품관리 엔진(ProFactory), 배치 스케쥴러(ProJobs), 리포트(ProReport), 계산기??? (ProMath), 컨텐츠 관리(ProCMS), 권한관리(ProRBAC), 메일(ProMail) 등등등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수많은 제품들이 개발되었다.
물론 이중에는 IFRS와 같이 개발비를 충분히 뽑은 제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대에 못미친 게 사실이다. (오픈프레임은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성공사례가 있긴 하지만 시작한 지 6~7년 정도된 기간을 고려하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성공 가능성은 제일 높은 편이지만.. 만년 유망주 정도)
그 수많은 제품들을 가만히 보면 혁신을 이루었다 평할 만한 솔루션은 기껏해야 "프로프레임 4.0" 정도이다. 기획단계에서 부터 드물게 BA(Business Analyst)가 투입되었었기 때문인다. 다른 대부분의 솔루션들은 그저 경쟁제품을 분석하거나 이미 나와있는 스펙대로 개발을 하는 '1등 따라잡기'였을 뿐이다. (표절을 의미하는 게 아님) Tmax/JEUS가 Tuxedo/WebLogic을 따라갔고, ERP는 처음에는 SAP를, 나중에는 더존을 따라가고자 했지만 결국 SI로 전락하고 말았다. Tibero는 대놓고 Oracle을 따라갔다. BPM, APM 등 나머지 제품들은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들이 워낙 많아서 기획 같은 것은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약속이라던 윈도우는? 하하하
늘 이렇게 스펙/표준이나 타제품을 따라가는 전략으로 나아갔으니 혁신적인 솔루션이 나올 수가 없었다. 제품소개나 제안서에 집어 넣을 그 흔한 "특장점"이 없다.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이 제품이 혹은 기능이 어떤 경쟁력을 갖는 지, 이게 회사에 어떤 이득으로 돌아올 지, 수지타산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없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는 시장상황과 경쟁제품에 대한 분석과 상세 기능스펙을 통해서 제품의 로드맵을 만든 후, 상세 개발일정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티맥스 연구소에는 이런 마케팅적인 일을 전담할 그 어떤 전문화된 조직도 없었다. 일개 개발자에 불과한 연구원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박대연 회장의 마인드였다. 연구원들이 제품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면 "그런건 컨설팅이나 영업, 마케팅의 몫"이라고 나무랐다. 고객이 던져주는 단편적인 요구사항 외에 영업이나 컨설팅에서 제품의 로드맵과 세부 기능스펙(Functional Requirement)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티맥스 연구소가 다른 채널로 부터의 요구사항을 불평없이 수용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엔지니어의 마인드로 회사를 운영하면 이렇게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일단 만들어둬라. 때가 되면 쓸 것이다' 이게 언제적 법칙인가.
저 제품들이 모두 다 독자적인 솔루션들인가? Software Stack을 완성하려면 저 수많은 제품들을 한데 뭉쳐서 유기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제어하는 뛰어난 아키텍트 혹은 아키텍트 그룹이 필요하다. 티맥스에는 박 회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실, 본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 돌아가는 솔루션을 만들기만 할 뿐, 다른 제품과의 연동과 통합을 고려한 설계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제품 자체의 완성도도 떨어지는 데, 타제품과의 연동이나 통합은 사실 관심 밖이다. BMT나 POC가 있어야 비로소 회의를 소집한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티맥스의 학벌을 생각하면, 적게는 5~6명에서부터 많게는 50~60명 까지 투입된 각 제품 담당연구원들은 고스란히 티맥스의 비용이었다. 도대체 세상 어느 회사가 이런 고급인력들을 돈안되는 제품 개발에 아무 생각없이 투입하겠는가. 물론 박대연 회장도 생각은 있었을 게다. Software Stack.
지금은 모습도 찾아보기 힘든 저 솔루션들도 파워포인트 문서에 들어가게 되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기에도 좋지 않겠는가. OS부터 Middleware, Framework, ERP, 검색엔진까지 기업용 Software의 모든 제품군을 내가, 우리회사가 만들었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느냐 말이다.
박대연 회장의 가슴속에는 항상 이 뿌듯한 성취감이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가슴에 비해 머리가 비어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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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와 같은 시기를 함께 했던 저 연구원들 대부분 티맥스를 떠났다.
박 회장이 만들라고 하면 팀을 꾸려서 제품을 만들고, 어느날 갑자기 변변한 이유도 없이 팀이나 실이 없어지는, 70~80년대 격변기와 같은 시기를 힘들게 보내온 저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그저 개발이 좋아 '월화수목금금금'을 감내하며 일에 몰두했던 이들은, 꿈과 젊음을 잃은 피해자들이자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댓가로 기술력이라는 이득을 얻게 된 사람들이다.
더 큰 피해자는 저런 제품을 갖고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엔지니어들과 개발자들이다.
제대로 된 매뉴얼 하나 없이 오로지 몸으로 부딪히며 끊임없이 나타나는 버그를 잡아왔던 그들의 고단한 세월이 더 일찍 무너질 수 있었던 티맥스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인공호흡기였다. '티맥스 기술력'의 부족한 98%를 뒤에서 몸으로 받쳐주던 그들이었다. 이들이 티맥스윈도우와 함께 "SI사업 실패"라는 명목으로 티맥스 몰락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평가되고, 프로젝트가 종료되자마자 퇴사를 종용당하기도 했던 현실이 개탄스럽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한 적자와 Software Stack 전략이라는 미명하에 연구소에서 삽질한 제품으로 인해 발생한 적자 중 어느 쪽이 더 클까? 비교가 되기는 할까?
시스템이 아닌 오로지 사람 중심으로 십여년을 버텨온 티맥스에서 연구원을 포함하여 이 사람들이 사라지니 그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티맥스 윈도우는 오늘내일 하던 티맥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 안락사를 시켜준 계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박대연 회장이 언제 어떤 계기로 윈도우 개발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위에서 얘기한 무수히 많은 Software Stack 관련 제품의 연구원들이 기존 제품을 포기하고 윈도우 개발에 상당수 참여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더많은 사람들은 퇴사를 했다) 윈도우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저 많은 연구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저들은 이미 사대강과 맞먹는 대삽질 "자체개발로 완성하는 Software Stack 전략"의 실패의 산 증인들이지만, 박 회장의 '연구원 사랑'이 워낙 대단해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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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더라도
티맥스의 기적같은 부활을 진심으로 희망한다.
먼 미래에 내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지금 이 티맥스의 역사속에 내가 있었노라고..
꼭 살아 나라. 티맥스소프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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