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싫어하는 회의는 주제를 한참 벗어나서 끝이 어딘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회의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회의를 한번 하고 나면 머릿속에서 일에 대한 열정은 송두리채 사라지게 되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며, 입에서는 자연스레 욕이 튀어나옵니다. 몸버려 시간버려 승질도 버립니다. 회의가 길어질 수록 집중력은 떨어져서 30분 정도 지나면,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노트를 끄적이는 사람들을 보게 되죠.
왜 이런 상황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날까요.
개발팀 내부회의 마저도 이런 식이라면, 십중팔구 회의를 주관하는 리더의 준비가 부족해서 입니다. 보통 회의의 목적은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함입니다. 이슈가 어려울 수록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는데, 사전에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거나, 개발자들이 자기 일에 쫓겨 별 고민없이 참석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개발자를 탓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회의를 주관하는 리더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부드럽게 진행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안(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빠르게 넘어가고, 다른 의견이 툭툭 나올 때 감정상하지 않도록 토론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죠.
글을 써놓고 보니 굉장히 원론적인 얘기입니다만, 숱한 회의를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1)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것
2) 먼저 안(案)을 제시할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인격적인 성숙함과 많은 준비, 고민이 있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옛날의 저는 굉장히 쉽게 '욱'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또하나의 덕목은 '균형감각'입니다. 한두사람이 참석하는 소회의는 그럴 필요가 굳이 없지만, 대여섯명 혹은 열명 이상의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참석자들을 두루두루 살펴야 합니다. 어떤 하나의 소주제에 너무 깊게 들어간다 싶으면 적당한 선에서 끊고 '회의 끝나고 따로 모여서 좀더 얘기를 진행하자'고 해야 합니다.
주간(혹은 일일)업무보고 미팅을 상상해보죠.
어느 팀원이 자신의 업무 얘기를 할 때 좀 이상하다 싶으면 '그건 이렇게저렇게 했어야지' 얘기를 합니다. 그 팀원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고, 리더는 그게 왜 핑계일 뿐인지 장황하게 얘기합니다. 별 관심없는 다른 팀원들은 핸드폰을 꺼내거나 옆사람과 속닥거리기 시작하고, 돌아가서 짜야 될 로직을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기도 합니다.
개발을 좀 해봤다는 많은 리더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이럴 때 저는 공통적으로 모두 알아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 다음을 기약합니다. 피하거나 미루는 게 아니고 잠시 회의 끝날 때까지 보류하는 거죠. 당연하게도 회의시간은 짧아지게 됩니다. 별 관심없는 얘기를 듣기 위해 장시간 앉아 있을 필요도 없으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 옆사람과 소근거리거나, 전화가 온 것도 아닌데 핸드폰을 꺼내거나, 머리를 푹 숙이고 노트에 뭔가 끄적거리면 저는 '아! 끊을 타이밍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있군요. 졸거나.
근데 사실 이렇게 회의가 늘어지는 상황은 고객들과의 미팅에서 더 자주 보게 됩니다. 통상 고객들 중 목소리 큰 누군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이런 회의를 짬이 부족했던 예전에는 끝날 때까지 꾹 참고 있었지만, 지금은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로 정중하게 끊습니다. '회의가 길어지니 끝나고 따로 얘기하시죠' 정도 선에서 말이죠. 그다지 정중한 게 아닌가요? 얼굴에는 미소를 띄우며 얘기를 하니 별로 기분나빠 하지는 않는데, 무대뽀 고객이 없는 건 아니니 프로젝트 분위기 봐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이건 뭐 사실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연륜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지금 있는 프로젝트도 처음 와서 먼저 있던 동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긴 회의 한번 하면 끝이 없어요'라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두번 회의에 참석해보니, 정말로 사람 피곤하게 만들더군요. 겨우 한두번 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1년 동안 같이 지냈던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고객들과 회의한다 그러면 한숨부터 쉬더군요.
이럴 때는 누군가가 나서서 총대를 메고 짤라줘야 합니다.
"허허. 그건 쫌있다가 좀더 심도있게 논의하는 게 어떨까요."
"다른 분들이 졸고 계시니 정신 말똥말똥한 사람들끼리 있다가 커피나 한잔 하면서 얘기하시죠."
제가 이런 걸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계기는 개발팀 내에서 스크럼(Scrum)을 적용할 때였습니다.

형식적인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스크럼 방법론에서 얘기하는 다른 것들(용어나 행동강령)은 무시했지만, Daily Scrum 만큼은 가급적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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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인다.
2. 각자 시계 방향(방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으로 돌면서 이전 Scrum 이후 지금까지 한 일, 다음 Scrum 때 까지 할 일, 예상되는 방해요소(Risk) 이 세가지만 짧게 얘기한다.
3. 이슈가 나오면 그자리에서 해결책을 찾지 말것. 끝나고 따로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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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년 동안 Daily Scrum을 해보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이 중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1번 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자신의 일을 얘기함으로 인해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후반부에 바쁜 개발자, 한가한 개발자가 한눈에 들어왔고, 적당히 업무를 나눠서 고르게 일을 할 수가 있었죠.
누군가 삽질을 하더라도 그 피해는 딱 하루 정도 분량일 뿐이고요. 기껏해야 하루 전으로 복구하면 되니 이 또한 전체 프로젝트에 엄청난 득이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후반부에는 개발팀이 13~15명 정도를 꾸준히 유지했었는데, Daily Scrum을 한번에 하기에 딱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15명 정도가 아무리 짧게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30분이 넘어가는 회의는 저도 곤욕이거든요. 만약 15명이 넘어갔으면 파트를 나눠서 진행했겠죠.
Scrum이니 Daily Scrum이니 용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일 미팅 혹은 Daily Meeting, 일일업무보고 등등 어떤 단어를 쓰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매일매일 모인다'는 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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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회의'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사실 지금 있는 곳의 다른 업무 개발팀 누군가로 부터 들은 얘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지 석달이 넘은 녀석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와서 한번도 회의를 한적이 없어요"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서너달 지속되어 분위기가 안좋고, 그동안 어려운 일들이 많았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팀내 회의가 없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되더군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퇴근길에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는 일본의 얘기(얼핏 주워들음)도 아니고, 우째 제 주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팀의 분위기는 그 팀원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죠. 그 리더가 가장 책임이 크겠지만, 그동안 한번도 어필하지 않았던 팀원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회의가 길어지거나 산으로 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화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친한 사람 한두명이 아닌, 팀 전체가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고, 어려움을 나누며 서로 힘이 되는 그런 자리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프로젝트가 어려워질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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